바이러스로 만든 '몸속 무선인터넷'

작성자
생명과학연구원
작성일
2013-01-09 00:00
조회
1175

 



바이러스로 만든 ‘몸속 무선인터넷’


세포간 통신 ‘바이파이(Bi-Fi)’ 성공


바이러스를 이용해서 특정 세포에 원하는 메시지를 마음껏 보낼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 바이러스가 품고 있는 유전자 정보를 조작한 후 세포에 몰래 침투시키는 원리다. 멀리 떨어져 있는 세포에도 전달이 가능해 몸속에 무선 통신망을 구축한 것과 유사한 효과가 발생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생물공학과 연구진이 세균 내에 침투해서 기생하는 바이러스 중 ‘M13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해 세포간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하는데 성공했다. 바이러스는 유전자 정보의 전달자 역할만 할 뿐 연관된 반응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안전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했다.

이 방식은 무선 인터넷처럼 직접적인 연결없이도 메시지가 전달되기 때문에 ‘생물학적 무선 인터넷’으로도 불린다. 와이파이(Wi-Fi)와 유사하다 해서 ‘바이파이(Bi-Fi)’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연구결과는 ‘DNA 메시지를 이용한 세포간 커뮤니케이션 완성(Engineered cell-cell communication via DNA messaging)’이라는 논문으로 정리돼 학술지 ‘생물공학저널(Journal of Biological Engineering)’ 최근호에 게재됐다.

세균에 기생하는 박테리오파지를 정보전달자로 이용

1915년 영국의 과학자 프레데릭 트워트(Frederick Twort)는 포도상구균 실험을 하던 중 알 수 없는 원인에 의해 세균이 녹아 있는 것을 발견한다. 1917년 프랑스 세균학자 펠릭스 데렐(Felix d'Herelle)은 원인이 되는 물질이 ‘박테리아를 잡아먹는다’ 해서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라는 프랑스어 명칭을 붙인다.

이후 전자현미경이 발명되면서 그 물질은 바이러스의 일종인 것으로 밝혀졌다. 바이러스는 혼자서는 살아가지 못하고 숙주에 기생해서 번식한다. 박테리오파지는 세균을 숙주 삼아 내부에 침투해서 영양분을 빼앗아 먹는다. 짧게는 단순히 ‘파지(phage)’라고도 부른다.

파지의 몸은 크게 머리와 꼬리로 나뉜다. 단백질로 이루어진 머리 부위에는 DNA 또는 RNA 등의 유전물질이 들어 있다. 그 아래 꼬리 부위에는 빨판 주위로 여러 개의 다리 모양 섬유가 나 있어서 세포벽에 쉽게 달라붙는다. 파지가 세균을 만나면 유전물질을 내부로 침투시키는데 세균의 유전자와 엉켜서 반응하면 함께 복제되기도 하고 자폭하기도 한다.

그 중에서 ‘M13’이라 불리는 파지는 머릿속에 한 가닥의 DNA만을 가지고 있어서 ‘외가닥 파지’라고도 불린다. M13 파지는 유전물질을 단백질로 포장해서 슬그머니 침투시키기 때문에 세균의 거부반응을 피할 수 있다. 덕분에 유전자 정보를 전달하는 매개체로 자주 쓰인다.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M13 파지 속 유전물질을 조작해 특정 메시지를 세포에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특정 명령을 수행하도록 유전자를 변형시킨 후 개별적으로 포장해서 M13 파지에 주입시킨다. 그러면 파지가 이리 저리 퍼져나가다 세균을 만나고 변형 유전자를 주입시킨다. 세포간 커뮤니케이션의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이다.

채널과 메시지 분리해 커뮤니케이션 효과 높여

일반적으로 세포간 커뮤니케이션에는 자체적으로 만들어내는 화학물질이 사용된다. 세포의 특성에 따라 정보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논문의 공저자로 참여한 드류 엔디(Drew Endy) 생물공학과 교수는 “당분을 주로 사용하는 세균이라면 당분을 이용해 메시지를 작성할 수밖에 없다”며 “기껏 해야 ‘당분 늘려’, ‘당분 줄여’, ‘당분 없애’ 정도의 메시지만 전달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M13 파지는 포장 안에 담긴 유전물질을 건드리지 않고 고스란히 전달하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변형을 일으키는 일이 없다. 유전자에 어떠한 조작을 가하든 어떠한 내용의 정보가 담겨 있든 상관없이 오로지 전달자 역할만을 수행하는 것이다. 덕분에 복잡한 내용의 유전자 정보도 세포간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오갈 수 있다.

논문은 이 과정을 커뮤니케이션 모델을 통해 설명했다. 커뮤니케이션 과정은 발신자, 수신자, 메시지, 채널 등의 요소로 구분할 수 있다. 발신자가 특정 채널을 이용해서 메시지를 보내면 수신자가 이를 받아보고 해석하는 것이다. 세포간 커뮤니케이션에 적용하면 발신자는 과학자, 수신자는 세균, 메시지는 유전물질, 채널은 박테리오파지가 된다.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박테리오파지에 담긴 유전물질이 고스란히 전달되도록 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논문의 주저자인 모니카 오르티즈(Monica Ortiz) 생물공학과 박사과정생은 “박테리오파지라는 ‘채널’과 유전물질로 이뤄진 ‘메시지’를 분리했다”며 “세균 군집에 속해 있는 특정 세포에게 복잡한 내용의 유전자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성장을 시작하라’, ‘성장을 중단하라’, ‘가까이 다가오라’, ‘헤엄쳐 멀어져라’, ‘인슐린을 생산하라’, ‘인슐린 생산을 중단하라’ 등의 메시지도 전달이 가능하다.

연구진은 또한 한 번에 전송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도 크게 증가시켰다. M13 파지가 실어 나르는 외가닥 DNA 사슬에만 4만 개 이상의 염기쌍을 탑재시킬 수 있다. 전자 통신망에서 정보가 0과 1의 이진수로 변환되어 전달되듯이 M13 파지는 염기쌍을 이용해 유전자 정보를 전달한다. 보통은 수백에서 수천 개의 염기쌍만 이용해도 웬만한 정보는 모두 전달할 수 있으니 무선 인터넷을 무제한 요금제로 사용하는 수준에 비유할 수 있다.

세포간 커뮤니케이션의 거리도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증식을 돕기 위해 글루코즈를 사용하는 배지뿐만 아니라 세포들을 서로 격리시키려 젤라틴을 사용하는 배지에서도 M13 파지는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메시지를 전달했다. 실험 결과 7센티미터까지도 유전자 정보가 전달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아주 작은 세포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먼 거리다.

연구진은 세균을 이용해 약물이나 연료를 생산하는 생합성 공장을 현실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유전자 기술이 발달하면 단순히 DNA 가닥을 2차원적으로 조작하는 차원을 넘어 3차원적으로 프로그래밍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세포의 반응을 유발하는 작업뿐만 아니라 상처 입은 조직을 복구시키거나 인공장기를 생산하는 일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오르티즈 연구원은 “생물학적 인터넷인 ‘바이파이(Bi-Fi)’는 아직 초기 단계에 놓여 있다”면서도 “1970년대에 발명된 인터넷이 현재는 안 쓰이는 분야가 없는 것처럼 바이파이도 미래에는 얼마나 널리 사용될지 아직 단언할 수 없다”고 희망을 피력했다.

 
임동욱 객원기자 | im.dong.uk@gmail.com

 
저작권자 2012.10.22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