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신경계는 대뇌의 말을 듣지 않는다

작성자
생명과학연구원
작성일
2010-03-31 00:00
조회
266
자율신경계는 대뇌의 말을 듣지 않는다
범죄수사에 활용되는 ‘거짓말탐지기’
2010년 03월 17일(수)

지난 15일 그동안 모르쇠로 일관하던 부산 여중생 이 모양(13) 납치 살해 사건 용의자 김길태가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부산 사상경찰서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2월 24일 소주 4~5병을 마시고, 부산 사상구 덕포동 일대를 배회하다가 오후 7~9시께 이 양집 다락방 창문을 통해 집안으로 침입했고, 근처 빈집으로 납치해 성폭행후 살해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DNA 증거 자료마저 인정하지 않았던 김 씨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이유는 무엇일까 

경찰 관계자는 “김 씨가 14일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부산경찰청 거짓말 탐지기 조사실에서 집중 조사를 받았다”며 “이 양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 장소의 사진을 보여줬더니 호흡과 맥박이 빨라지는 양성 반응을 보였고, 이후 범행을 자백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강력범죄 해결의 효자노릇을 하는 거짓말탐지기의 효용성이 다시 한 번 입증됐다. 거짓과 진실로 가려진 인간의 내면세계를 비추는 거짓말탐지기는 아직 100% 신뢰를 얻지 못하지만 최첨단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더 확실한 증거 확보를 향해 진화하고 있다.

피노키오 효과는 사실이다

▲ 거짓말을 하면 코가 자라는 피노키오. 
어느 날 이탈리아의 산골 마을에 있는 늙은 목수 안토니오가 땔감에 좋은 장작 나무 하나를 구했다. 그런데 첫날부터 그 장작 나무는 이 목수를 기절초풍하게 만든다. 바닥에 던지면 “아야!”하고 사람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날 동네 친구인 늙은 제페토가 그를 찾아와 나무인형을 만들 좋은 나무 하나를 달라고 조른다. 안토니오와 제페토는 이 나무의 농간으로 주먹다짐까지 벌이지만 곧 화해하고, 제페토는 그 수상한 나무를 건네받는다.

제페토는 집에 오자마자 나무인형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대패질을 하다가 그만 깜짝 놀라 자빠지고 말았다. 이 나무가 “아이 간지러워!”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더욱 놀라운 일은 나무에 코를 만들어주자 갑자기 엄청나게 길어지기 시작한 것.

1883년 이탈리아의 극작가 ‘카를로 로렌치니(Carlo Lorenzini)’가 쓴 동화 ‘피노키오(Pinocchio)’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야기 속에서 피노키오는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기 때문에 결코 거짓말을 할 수 없다. 과연 동화 속에서만 그럴까 

이른바 ‘피노키오 효과(Pinocchio effect)’란 말이 있다. 거짓말을 하면 할수록 코가 늘어나는 동화의 주인공 피노키오의 이름을 따서 거짓말을 할 때 나타나는 신체의 증상을 가리키는 말.

1920년대 시카고에 있는 후각과 미각 치료 조사 재단의 과학자들은 “거짓말을 하면 카테콜아민이 분비돼 코 속의 조직을 팽창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들은 몸속의 혈액 흐름을 볼 수 있는 특수 카메라를 이용,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면 혈압이 상승, 거짓말을 하면 실제로 인간의 코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이를 '피노키오 효과'라고 불렀다.

르윈스키 성추문 재판 당시 증인으로 나선 클린턴 대통령은 무려 64번이나 코를 만졌다는 후일담이 전해지고 있다.

▲ 거짓말탐지기는 심전도를 위주로 발전해왔다. 

자율신경계는 진실만을 나타낸다 

19세기의 동화 피노키오에선 인간의 거짓이 허구와 마법을 통해 나타나지만 21세기에는 거짓말탐지기란 첨단 기기가 거짓과 진실을 밝히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거짓말을 하면 심리적으로 흥분 또는 갈등, 불안 등의 긴장상태가 된다. “탄로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신체가 내보이는 자동 반응”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현대 의 첨단 기기는 이런 생리적 변화를 모두 측정할 수 있으며, 호흡과 심장 박동 수, 혈압 변화 등을 세밀하게 짚어내는 다용도기록계 ‘폴리그래프(polygraph)’ 즉 거짓말탐지기가 바로 그것.

이 계측기는 주로 인체의 자율신경계을 이용한다. 자율 신경계의 경우, 대뇌의 명령을 받지 않고, 몸의 상태를 신경 스스로 판단, 자율적으로 활동해 생명을 조절한다. 논리적인 대뇌가 교활한 거짓말을 생각해내도 공포에 반응해 스스로 움직이는 자율신경계는 그 거짓말에 대응할 수 없다.

자율신경계 중의 교감신경은 호흡기관, 소화기관, 심장과 혈관 등과 연결돼 긴장, 공포 등에 민감하게 반응 심박 수 증가, 호흡수 증가, 체온 증가 등의 사인을 계측기에 나타내준다. 이는 응급상황, 공격, 방어, 경쟁 등을 위해 골격근육이 에너지를 집중사용하기 때문이며, 인간이 오랫동안 진화해오는 동안 수많은 위협으로부터 진화한 결과로 절대 속일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이 과학자들의 주장.

특히, 거짓말탐지기 검사 시에 피험자가 흘리는 땀에 약한 전류를 흘려보낼 때, 전기저항이 일어나는 생리현상에 대해 거짓말탐지기 전문가들은 “다른 건 몰라도 땀을 많이 내는 것은 여간해서 속이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시각적 자극에 대해서도 자율신경계는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이 역시 진화의 산물로 추정되고 있다. 사람은 무서운 광경이나 사진을 보면, 응급대처상황으로 돌변하고, 자율신경계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모르쇠로 일관하던 김길태가 범행 장소의 사진을 보고, 거짓말탐지기에 양성반응을 나타낸 것은 이와 관련이 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말탐지기는 아직 법정에서 증거 자료로 채택되고 있지 않다. 사람의 유전적 형질이 제각기 다르고, 생리현상 역시 다르기 때문에 때와 장소에 따라 사람의 혈압과 심박, 심지어 체온이 다른 분포를 보일 수 있다는 것. 심리적으로도 긴장의 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 법조계의 견해다.

일례로, 사이코패스의 경우, 심리적 변화가 일반인과 판이하게 다를 수 있고, 생리적 변화를 감지할 수 없어 거짓말탐지기의 신뢰도는 더욱 떨어진다는 것이 법조계의 견해다.

진화하는 거짓말탐지기의 미래

우리나라 법원에서 거짓말탐지기의 검사결과가 증거로 채택된 적은 없지만 그 검사 영역이 과학의 발달과 함께 변화하고 있어 향후 그 귀추가 주목된다.

1895년 이탈리아의 ‘케사르 롬브로소(Cesare Lombroso)’가 수압장치를 사용, 심문 중에 일어나는 혈압과 맥박의 변화를 측정한 이래 1875년 이탈리아 과학자 ‘안젤로 모소(Angelo Mosso)’ 등이 불안이 혈압 및 호흡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며 거짓말탐지기는 첫 선을 보였다.

그러나 거짓말탐지기의 시초는 1921년 심리학자 ‘존 라슨(John A. Larson)’이 만든 혈압, 맥박, 호흡의 변화를 동시에 기록할 수 있는 장치 ‘The bread-board state of lie detection’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는 이 기계를 형사사건의 심문에 사용하기도 했다.

▲ 미래엔 위전도, 뇌파 등으로 거짓말탐지기의 영역이 확대될 전망이다. 

오늘날 거짓말탐지기는 심박파와 혈압파 등의 미세한 파동을 잡아내는 매우 정교한 기술로 발전했다. 더불어 신뢰도가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거짓말탐지기의 신뢰도는 아직 의문의 대상이며, 이를 위해 과학자들은 새로운 연구영역 찾기에 나서고 있다.

2004년 11월 필라델피아 템플 대학의 ‘스캇 파로(Scott Faro)’ 교수는 “아무리 능란하고 경험이 풍부한 거짓말쟁이도 이 기술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는 뇌의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 거짓말을 탐지해내는 기술.

뇌의 내부를 영상화하는 이 기술은 활동 중인 뇌의 영역을 가시화시키고, 거짓말을 할 때와 진실을 말할 때, 같은 영역의 뇌가 활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2008년 미 국방성의 뇌과학 응용 팀은 인지과학과 신경과학의 군사적 응용에 대한 보고서를 통해 ‘마인드 리딩(Mind Reading)’ 분야의 개발을 공표했다. 이는 심리학 모형과 신경과학의 이미지 처리 기술 발전을 통합,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술을 말한다.

2005년 미국 위장병학 협회가 주최한 정기 학술 모임에서는 심전도 일변도의 전통적 기술에서 위의 생리학적 상태를 판단하는 위전도 거짓말 탐지기가 발표되기도 했다. 또 사람이 진실을 얘기할 때, 특정 음성 주파수가 발생하는 원리를 이용한 LVA 등도 거짓말 탐지기의 진화를 예고하고 있다.

거짓말탐지기는 인체의 모든 부위를 측정대상으로 넓히며 진화하고 있다. 교활한 대뇌보단 진실한 자율신경계를 대상으로 거짓말탐지기는 범죄 없는 세상을 향해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조행만 기자 | chohang2@empal.com

저작권자 2010.03.17 ⓒ ScienceTimes